이강년 생가지

  • 생활
  • 유적
  • 시도자연유산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대한제국기 의병장 이강년의 생가터. 생가지.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만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문경 이강년 생가지 전경 미디어 정보

문경 이강년 생가지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대한제국기 의병장 이강년의 생가터. 생가지.

내용

1993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강년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호는 운강(雲崗)이다.

선생은 병서(兵書)와 유학(儒學)에 조예가 깊어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하였다. 1896년 1월에는 왜적의 침략에 항거하여 가산(家産)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모성(故母城)ㆍ수안보(水安堡)ㆍ문경새재(鳥嶺)전투 등에서 적 500여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단양ㆍ제천ㆍ원주ㆍ횡성ㆍ예천ㆍ영주ㆍ봉화ㆍ안동 등지에서 전투를 하는 중 민긍호ㆍ김상태 등 40여 의병진(義兵陣)이 모여 전국도창의대장(全國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고, 1907년 고종황제로부터 전쟁시 의정(議政)이 겸임하는 최고군직인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칙령(勅令)을 내렸다.

그 후 강원도ㆍ경상도ㆍ충청도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우다가 1908년 적의 총탄을 맞고 붙잡혀 서대문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향년 51세, 창의한지 13년이다. 1962년 3월 정부에서 선생의 자주독립에 공이 인정되어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建國功勞勳章 大韓民國章)을 추서(追敍)하였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