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강년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 호는 운강(雲崗)이다.
선생은 병서(兵書)와 유학(儒學)에 조예가 깊어 1880년(고종 17) 무과에 급제하였다. 1896년 1월에는 왜적의 침략에 항거하여 가산(家産)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모성(故母城)ㆍ수안보(水安堡)ㆍ문경새재(鳥嶺)전투 등에서 적 500여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서 단양ㆍ제천ㆍ원주ㆍ횡성ㆍ예천ㆍ영주ㆍ봉화ㆍ안동 등지에서 전투를 하는 중 민긍호ㆍ김상태 등 40여 의병진(義兵陣)이 모여 전국도창의대장(全國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었고, 1907년 고종황제로부터 전쟁시 의정(議政)이 겸임하는 최고군직인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칙령(勅令)을 내렸다.
그 후 강원도ㆍ경상도ㆍ충청도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우다가 1908년 적의 총탄을 맞고 붙잡혀 서대문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향년 51세, 창의한지 13년이다. 1962년 3월 정부에서 선생의 자주독립에 공이 인정되어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建國功勞勳章 大韓民國章)을 추서(追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