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천로(天老),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이부만(李傅萬)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잘 지었으며, 성장하면서 무재(武才)가 뛰어나 선전관이 되었다.
1769년(영조 45)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을 거친 뒤, 1773년 부안현감으로 나가 선치(善治)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여 홍국영(洪國榮)의 누이를 원빈(元嬪)으로 삼자, 홍국영의 권세가 높아졌는데 이격은 홍국영과 다투어 남양으로 유배당하였다.
얼마 뒤 풀려나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도총부총관(都摠府摠管)을 지냈다. 아들 이현직(李顯稷)이 어영대장에 오르자 좌참찬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