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대가 ()

고전시가
작품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이칭
이칭
이견대
정의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구성 및 형식

원사(原詞)는 전하지 않으며, 제목과 전하는 이야기와 평(評)이 『고려사(高麗史)』 권71 악지(樂志) 삼국속악(三國俗樂) 신라조에 전하고, 그 내용이 축약되어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내용 및 평가

『고려사』에 실린 제목은 ‘이견대(利見臺)’이며, 『증보문헌비고』에는 ‘이견대가’로 되어 있다. 전하는 이야기와 평을 살펴보면 “신라왕의 부자는 헤어져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상봉하게 되자 대(臺)를 쌓아서 부자상봉의 기쁨을 다하고 「이견대」를 지어 불렀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왕의 부자가 서로 헤어져 만나지 못할 까닭이 없는데, 이웃나라에 나가서 회동(會同)하였는지도 모르겠고, 혹 인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평을 더하고 있다.

『고려사』의 「이견대」에 의하면 이견대는 왕의 부자가 상봉한 곳이며, 「이견대」는 왕의 부자가 상봉함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의 “후에 용이 모습을 나타낸 곳의 이름이 이견대”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고 기뻐하여 그 기념으로 이견대를 축조하고 682년에 「이견대」를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이견대잡고」(박노춘, 『문호』5, 1969)
집필자
박노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