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병사 이제신(李濟臣)이다. 1608년(선조 41) 같은 서자인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심우영(沈友英)·박치인(朴致仁) 등과 함께 서얼들에게도 관계진출의 길을 열어줄 것을 상소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후 여주의 소양강 가에서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내며 강변칠우 또는 죽림칠현이라 자처하였으며, 당대의 명사였던 허균(許筠)과도 교유하였다. 1613년(광해군 5) 4월 그들 일당이 은상인(銀商人)을 살해하고 은 수백냥을 강탈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목숨을 살려준다는 대북파(大北派)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일당의 꾐에 빠져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옹립을 위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은을 강탈하였다고 허위로 자백, 계축옥사를 일으켜 사형되었다.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위리안치되었다가 죽임을 당하고,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은 처형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