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미(君美), 호는 묵호(默好) 또는 춘전거사(春田居士).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며, 이경윤(李憬胤)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시발(李時發)이다. 어머니는 신응구(申應榘)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며 문장에 뛰어났고 1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그 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뒤, 이듬해 검열을 거쳐 1647년 지평에 올랐다.
1653년(효종 4) 행홍문관수찬·지제교 겸 경연검토관(知製敎兼經筵檢討官)을 역임하고, 춘추관기사관으로 『인조실록』 편찬사업에 참여하여 헌납이 되었다.
언관으로 있을 때에 인품이 온순 단정하며 도량이 넓고 평소에도 말이 적어 주변에서 이경휘를 두려워하였지만, 반면에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인물을 아끼기로 유명하였다.
또, 이조참의로 있으면서 양제신(梁濟臣)의 수령 임명 시에 의망(擬望: 후보자를 추천함)을 거부하여 체직(遞職: 관직이 교체됨)되기도 하였다.
한편, 1668년(현종 9) 현종이 온천에 행차할 때 삼남지방의 세선(稅船)들이 안흥진(安興津)에서 자주 파손되자 태안에 새로 포(浦)를 만들 것을 의논하여 이미 실행단계에 들어갔는데, 그 부당성을 상소하여 중단된 일도 있었다. 그 뒤 강화유수·경기감사 등 외직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