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동지중추부사,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오랫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1503년 장령이 되었고, 전한을 거쳐 좌부승지가 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대사헌으로 승진했으나, 이듬 해 박경(朴耕)의 옥사로 진도에 유배되었다. 곧 억울하게 연루되었음이 밝혀져 풀려나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09년 경기도관찰사에 임명되고, 이듬 해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평안도관찰사를 비롯해 호조·형조·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17년 주청사(奏請使)로 중국에 가서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이성계(李成桂)가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발견하고 보고하였다. 이어 좌찬성·병조판서 겸 지경연사(兵曹判書兼知經筵事)를 거쳤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사류(士類)들에 대한 처리가 지나치자, 스스로 논의에 맞지 않다고 여겨 김제(金堤)에 있는 농막으로 퇴거하였다. 성품이 강직해 옳고 그름에 명백한 태도를 취했고 군자다운 태도가 있었다 한다. 전주의 서산사우(西山祠宇)와 김제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점필재집(佔畢齋集)』
- 『탁영집(濯纓集)』
- 『재사당일집(再思堂逸集)』
- 『청음집(淸陰集)』
- 『이평사집(李評事集)』
- 『허암유집(虛庵遺集)』
- 『해동잡록(海東雜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