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창성 출신.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일제의 앞잡이인 흥경보민회(興京保民會) 토벌에 많은 공을 세우고, 1919년 겨울 보민회 총감 오가와[小川]를 습격하여 오가와와 일행 수십명을 사살하였다.
1920년 7월 벽동경찰서를 습격, 일본경찰 여러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1922년 1월 초산에 출동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교전중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숨졌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