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방경(芳卿). 이경천(李慶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선복(李善復)이다. 아버지는 이성전(李晠傳)이며, 어머니는 채계주(蔡繼周)의 딸이다. 당숙인 이광전(李光傳)에게 입양되었다.
사마시를 거쳐 1666년(현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분관되어 정자·저작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지평에 올랐고, 이듬해 조경(趙絅)의 출향(黜享: 神位를 모신 사당에서 제외시킴)을 주장하다 체직되었다.
1682년 패초(牌招)를 어긴 유득일(兪得一)을 대신하여 지평으로 재등용되었고, 이어 장령이 되었다가 이듬해 정언·장령에 번갈아 제수되었다. 1686년에는 헌납으로 재직하면서 이상진(李尙眞)을 두둔하다가 파직되었으나 3년 후 복직하였다.
1689년(숙종 15) 승지에 제수되었고, 1701년(숙종 27) 장희재(張希載) 옥사 당시 국청에서 추문할 문목(問目)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죄인의 사정(私情)을 함부로 진달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뒤 판결사(判決事)에 제수되었다가 승지에 재임용되었으며, 무고(巫蠱)의 옥사 국청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결시키는 논의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1706년(숙종 32)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