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방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장령, 헌납,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방경(芳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1년(인조 19)
사망 연도
1718년(숙종 44)
본관
전의(全義)
주요 관직
정언|장령|헌납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헌납,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방경(芳卿). 이경천(李慶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선복(李善復)이다. 아버지는 이성전(李晠傳)이며, 어머니는 채계주(蔡繼周)의 딸이다. 당숙인 이광전(李光傳)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마시를 거쳐 1666년(현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분관되어 정자·저작 등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지평에 올랐고, 이듬해 조경(趙絅)의 출향(黜享: 神位를 모신 사당에서 제외시킴)을 주장하다 체직되었다.

1682년 패초(牌招)를 어긴 유득일(兪得一)을 대신하여 지평으로 재등용되었고, 이어 장령이 되었다가 이듬해 정언·장령에 번갈아 제수되었다. 1686년에는 헌납으로 재직하면서 이상진(李尙眞)을 두둔하다가 파직되었으나 3년 후 복직하였다.

1689년(숙종 15) 승지에 제수되었고, 1701년(숙종 27) 장희재(張希載) 옥사 당시 국청에서 추문할 문목(問目)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죄인의 사정(私情)을 함부로 진달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뒤 판결사(判決事)에 제수되었다가 승지에 재임용되었으며, 무고(巫蠱)의 옥사 국청이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결시키는 논의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1706년(숙종 32)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현종실록(顯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