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성균관전적, 형조정랑, 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형조좌랑으로 복귀한 뒤 정언에 재등용되어 윤두수(尹斗壽)·정영국(鄭榮國)을 탄핵하였고, 이어 경성판관으로 파견되었으나 사리사욕만 취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02년(선조 35) 사간원헌납을 제수 받은 뒤 성균관전적·형조정랑을 거쳐 1605년에는 풍기군수에 제수되었다가 2년 뒤에는 전적·형조정랑으로 재임용되었다.
1608년(선조 41) 성균관직강에 제수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하자 장령이 되었고, 그 뒤 필선·집의 등을 거쳐 1614년(광해군 6) 우부승지에 올랐다. 남이공(南以恭)·김신국(金藎國)·유희분(柳希奮) 등의 소북세력과 교류하여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이 사사된 뒤에도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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