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부사(府使)를 지낸 겸주(謙周)이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된 진주유씨(晋州柳氏)이다.
1862년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섰다.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 ·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 등을 거쳐서, 1872년 홍원현감(洪原縣監)으로 나갔다. 1881년 삼수부사(三水府使), 1886년 내금위장(內禁衛將), 1892년 전라우도(全羅右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훈련도정(訓鍊都正)에 임명되었다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 별군관(別軍官)에 임명되었다. 동학군에 대한 정부군의 선봉장으로서 통위영(統衛營)의 병졸을 이끌고 청주 · 공주지역에서 방어하였다.
1895년 6월 23일 서울의 집에서 죽으니, 향년은 겨우 54세였다.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仙遊洞) 선영(先塋)의 해좌(亥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