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에 남평군수(南平郡守)을 지내다가 이듬해 함흥과 영흥, 양(兩) 본궁(本宮)의 대대적인 수리를 맡아 가자(加資 : 조선시대 정삼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로 올리는 일)되었다. 1904년에 정3품에 올랐고 김해군수로 임명되었다.
1905년에 종2품에 올랐으며, 평리원검사(平理院檢事) 칙임관 3등, 한성재판소수반판사(漢城裁判所首班判事),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 칙임관 3등, 농공상부협판(農工商部協辦) 칙임관 2등을 역임했다. 이듬해 경기관찰사,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 칙임관 2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