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익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좌부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국필(國弼)
  • 시은(市隱)
  • 시호양정(良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39년(영조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간원정언|좌부승지|대사간|강원도관찰사
  • 출생 연도1654년(효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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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좌부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국필(國弼), 호는 시은(市隱). 할아버지는 종실(宗室) 봉래수(蓬萊守) 이형윤(李炯胤)이고, 아버지는 이무(李堥)이며, 어머니는 공조판서 최내길(崔來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694년에 성균관 유생을 이끌고 송시열(宋時烈)의 신원(伸寃)을 위한 소를 올리자, 왕이 이를 가납(嘉納)하였다. 2년 뒤 문음(門蔭)으로 참봉에 기용되었고, 이어서 부평·영동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1713년 60세의 나이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의 헌납(獻納)·집의(執義) 등의 대간직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17년 좌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승지·대사간을 역임하고 강원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다시 대사간·승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1725년(영조 1) 병조참판에 임명되었다. 이후 동지의금부사·대사간·예조참판·승지·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고, 1733년 80세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계속 가자되어 1736년에는 지돈녕부사·공조판서 등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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