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상(季祥). 이만상(李萬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이봉조(李鳳朝)이다. 아버지는 도승지 이정신(李正臣)이며, 어머니는 유이진(柳以震)의 딸이다.
1741년(영조 17) 형조좌랑으로 있을 때, 액례(掖隷)사건으로 의금부에 하옥된 일이 있으며, 1754년(영조 30) 중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지평, 이듬해에 장령이 되었다. 1755년(영조 31)에 형 이철보(李喆輔)에게 토역소(討逆疏: 반역자들을 성토하는 상소)를 올리도록 하였다.
1756년(영조 32)에는 세자에게 상소하여, 병을 다스리는 방법은 오직 강학(講學)에 있다고 하여 왕세자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 이듬해에 승지가 되었고,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759년(영조 35)에 도승지가 되었고, 2년 후 대사간이 되었다. 1769년에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1771년 작고하자 국왕은 제문을 지어보내고, 성복(成服)하는 날에 예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