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성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칠곡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장진홍이 전개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사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2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3년(고종 30)
  • 출생지경상북도 칠곡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민영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이내성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이내성 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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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칠곡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장진홍이 전개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사건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19년 3·1만세시위 때 향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200여 명을 규합,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일본경찰에 잡혀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같은 해 10월 9개월로 감형되었다.

그 뒤 1927년 5월 동향인 장진홍(張鎭弘) 등과 함께 대구지점 조선은행을 폭파시킬 때 총참모로 활약하였다. 일본경찰의 추격을 피하여 은신하던 중, 같은 해 8월 구미에서 자결,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 『독립운동사자료집』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 - 『동아일보(東亞日報)』

  • - 「대구지방법원판결문(大邱地方法院判決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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