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호연(浩然).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이인(李仁)이며, 아버지는 이춘방(李春芳)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선전관으로 있다가 녹도만호가 되었다. 1587년 남해안에 왜구가 침입하자 부하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20여 척의 배를 대파하는 전과를 올리고 적장을 붙잡아 수사 심암(沈巖)에게 바쳤다. 그러나 전공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심암의 요청을 거절하여 미움을 샀다. 다시 왜구가 흥양에 침입하자, 심암의 명으로 군사 100여 명을 이끌고 출병하여 손죽도(損竹島) 해상에서 적과 격투 끝에 붙잡혀 항복을 거부하다가 살해당하였다.
이에 앞서 관찰사의 장계(狀啓)로 이대원의 승전이 조정에 보고되어 심암은 파면되고 대신 수군절도사에 발령되었으나, 조명(朝命)이 도달하기 전에 죽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고향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흥양의 쌍충사(雙忠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