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영안도관찰사, 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특명으로 회령부사가 되어,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전의군(全義君)에 봉해졌다. 이어 회령진병마절제사를 겸했고 이듬 해 8월 평양부윤이 되었다. 1469년(예종1) 관비(官婢)에게 지나친 형벌을 집행하여 죽게 한 죄로 고신을 몰수당했으나, 이듬 해 3월 한명회(韓明澮)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직첩을 돌려받고 12월에 다시 전의군에 봉해졌다.
1473년(성종 4) 문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청도관찰사 겸 병마절도사·경기관찰사·영안도관찰사 등 지방관을 7년 동안 지냈다. 영안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건주위정벌(建州衛征伐)에 공을 세웠다. 1480년 공조참판·병조참판을 거쳐, 1482년 형조판서에 승진한 뒤 대사헌·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신장이 8척이고 어릴 때부터 무예에 뛰어났으며, 왕실과 인척 관계로 세조·예종·성종 3조에 걸쳐 벼슬했는데, 특히 세조·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지방관으로서 부임하는 곳마다 치적이 있었고 청렴했다 한다. 시호는 장경(莊敬)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허백정집(虛白亭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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