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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부여, 고구려 시대 부족 단체장의 이름 또는 관명.
정의
부여, 고구려 시대 부족 단체장의 이름 또는 관명.
개설

과거에 왕으로 선출된 적이 있는 부족의 장이나 왕과 혼인을 맺은 인척의 부족장에 대한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가의 어원은 대부족의 군장(君長)이나 왕을 의미하는 간(干, Kan), 한(汗, Khan)과 깊은 관계가 있고, 가는 간, 한의 종성이 탈락한 음전(音轉)이 축약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내용

부여, 고구려 사회의 대부족장인 대가(大加)에 해당하는 왕을 신라에서는 거서간(居西干),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하였고, 관명에도 제1관등인 이벌찬(伊伐飡)을 서발한(徐發翰) 또는 각간(角干)으로 표시하는 것 등을 볼 때 가(加), 간(干), 찬(飡), 한(翰) 등이 뜻을 같이하는 공통어로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몽고어의 대간(大干), 대한(大汗)도 군장을 의미하는 용어임을 생각할 때, 가(加), 간(干), 한(汗)은 동아시아 공통의 고대어였다고 생각된다.

『삼국지』 부여전에 의하면 “부락에는 세력 있는 백성이 있어서 세력 없는 백성을 노복으로 삼았다. 여러 부족장은 사방의 부족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 세력이 큰 자는 수천 가(家)요, 적은 자는 수백 가였다.”고 하여 부족장에는 세력의 대소가 있었음을 나타냈고 여러 부족장을 제가(諸加)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고구려전에는 “큰 부족장들은 자기 스스로 사자(使者), 조의(皁衣), 선인(先人)의 관인을 두고 있고, 그 명부를 왕에게 바치고 있었으며 마치 경대부의 가신과 같이 배신(陪臣)이었으므로 회동좌기(會同坐起)에 있어 왕가의 사자, 조의, 선인과 동렬일 수 없다.”고 했는데, 언뜻 봉건적인 계서제(階序制)를 연상케 하는 기록이다.

또, 고구려전에 “제가가 평의하여 죄인을 사형에 처하고 그 처자를 노비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고구려에서는 게르만 민족의 부족평의회(Stammesrat)와 같은 ‘제가평의회’를 가졌다는 것이 되며, 이는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여 부족에도 적용될 것이다.

부여전을 보면 “제가가 모여 마여(麻餘)를 부족장에 선출하였다. 활, 칼, 창으로 병기를 삼고 가가호호 갑옷과 병기로 무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전에는 “나라 사람들이 기력이 있고 전투에 능숙하였다. 적이 있으면 제가가 병력을 거느리고 각자 싸웠다.” 등의 기록이 보인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부여, 고구려의 부족장들인 제가, 제대가(諸大加)는 자치적으로 부족평의회(제가평의회)를 조직하고 평의회의 의결로 왕을 선출하고, 죄인이 있으면 역시 평의회의 의결로 처벌하였고, 적이 있으면 제가가 스스로 사령관이 되어 게르만 민족의 경우처럼 활, 칼, 창 등으로 무장한 국민을 이끌고 싸운 것이다.

변천과 현황

가는 간(干), 한(汗)의 동의어로 원래 부족 단체의 장에 대한 명칭이었으나, 세력 있는 대가들이 모여서 서로 협력하여 연맹적인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제대가의 평의회에서 부족 연맹을 대표하는 왕이 선출되면, 왕의 부족이 아닌 부족의 장들인 제가, 제대가가 왕을 보필하는 높은 관직을 얻음에 따라 가가 관명으로 전용되었으리라는 생각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삼국지』 위서 부여전에 의하면 “나라에 왕이 있고 가축의 이름으로 관명을 삼으니,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전에는 “나라에 왕이 있고 관으로 상가(相加), 대로(對盧), 패자(沛者), 고추가(古鄒加), 주부(主簿)가 있다.”라고 되어 있어 각기 가가 붙은 관명을 열거하고 있다.

신라의 왕명으로 거서간, 마립간이 있고, 관명으로도 간(干), 찬(飡), 판(判) 등이 붙은 것이 많이 있는 것을 볼 때, 신라의 왕권 형성이 부여, 고구려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왕의 종족이나 인척인 고귀한 부족의 대가를 고추가(古雛加)라고 존칭하였다. 『삼국지』, 『후한서』, 『양서』 등의 고구려전을 보면 관명 중에 고추가가 있어 관명 같기도 하나, 『삼국지』 고구려전에 의하면 “왕의 종족인 대가는 모두 고추가라고 칭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추가는 왕의 종족에 속하는 대가에 대한 존칭이었다.

또한 “연노부(涓奴部)는 본래 국주로서 왕족이었지만 지금은 왕이 아니나, 그 부족의 적법한 대가는 고추가를 칭할 수 있었고 동시에 종묘도 세우고 영성과 사직에 대한 제사도 할 수 있었다.”라고 하고, “절노부(絶奴部)는 대대로 왕가와 혼인하고 있는 관계로 고추가의 호를 받고 있었다.”라고 하여, 절노부는 왕가와 인척관계를 맺고 있어서 고추가의 칭호를 갖고 있었음을 밝혔다.

원래 고구려는 부족연맹의 국가로 5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구려전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5부족이 있었다.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이며, 본래 연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점차 족세가 쇠미하여진 관계로 지금은 계루부에서 연노부 대신 왕이 나오고 있다.”고 한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고추가는 관명이 아니고 왕권과 관계가 깊은 고귀한 대부족의 장인 대가에 대한 존칭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하면 왕계의 대부족의 장에게만 고추가의 존칭을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부족 세력의 변동으로 국왕의 선출이 연노부에서 계루부로 옮겨감에 따라, 연노부는 과거의 왕족이었으므로 그 적법한 대가에게 고추가라는 존칭을 허락하였고, 또 대대로 왕가와 혼인을 맺어 왕의 인척이 되고 있는 부족인 절노부의 대가에게도 고추가라는 존칭을 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가는 부여와 고구려의 지배 계층을 이루었던 귀족 신분의 관명을 고찰할 수 있는 제도의 일환으로서, 중앙정부에서 일정 부분 권력을 담당하고 소속 집단에 지배권을 행사하던 국가체제의 지배층 모습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古代官名‘加’硏究」(田鳳德, 『法學硏究』 1, 1954)
「高句麗 前半期의 加階級」(金光洙, 『建國史學』 6, 1982)
집필자
전봉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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