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동부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달경(達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 사망 연도1773년(영조 4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직산현감|시강원문학|수찬|대사간
  • 출생 연도1675년(숙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광용 (성심여자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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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동부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달경(達卿). 이행건(李行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만웅(李萬雄)이다.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이징하(李徵夏)이며, 어머니는 정보연(鄭普衍)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1년(경종 1) 생원이 되고, 1723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소론의 득세로 벼슬에 뜻이 없어 퇴거하여 있다가 영조가 즉위하자 이듬해에 시강원설서로 입사하였다.

그 뒤 성균관전적·병조좌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의 자리에 있으면서 소론의 조태구(趙泰耉), 유봉휘(柳鳳輝) 등을 탄핵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기도사로 임명되었다가 곧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옮기고, 다시 직산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27년에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시강원문학을 거쳐 홍문관부수찬·수찬에 임명되었다. 이 때 삼사가 합계하여 다시 소론을 탄핵하다가 당시 정청(庭請: 대사를 품계하여 전교를 기다림.)을 올린 영부사(領府事) 민진원(閔鎭遠) 등 101인이 파직된 정미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730년 부수찬·교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고, 그 해에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의릉(懿陵)의 비액(碑額)을 써서 통정대부에 올라, 동부승지를 거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그 뒤 노모를 모시기 위하여 안동부사로 부임, 3년을 지내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효자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뇌연집(雷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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