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병조좌랑,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뒤에 통제영의 우후(虞侯)가 되었는데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1610년(광해군 2)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춘추관기사관으로 『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났을 때 의금부의 탄핵으로 삭직당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우국가(憂國歌)」 28수를 지어 당시 국정에 대하여 충분(忠憤)한 심정을 읊었다. 이 「우국가」가 학자에 따라 「당쟁상심가(黨爭傷心歌)」 또는 「당쟁비가(黨爭悲歌)」라고도 불리며, 국가의 안위를 비분강개하여 읊고 있어 우국만을 주제로 한 시조작품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것이 된다.
당대의 세력가 유희분(柳希奮)의 매부였으나 중앙정국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켰다는 칭송을 받았다. 함평의 월산사(月山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칠실유고』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장암집(丈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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