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공(伯恭). 이지항(李之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원구(李元龜)이다. 아버지는 이진수(李震壽)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장원(朴長遠)의 딸이다. 정산(定山)에 살았다.
1725년(영조 1) 정시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양사(兩司) 및 승지와 대사간에 이르렀다. 1727년(영조 3)에 충청도별견어사(別遣御史)가 되었다가 곧바로 지평의 내직으로 옮겼다.
1728년(영조 4) 김일경(金一鏡)·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호서어사로 임명되었으나 난을 평정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왔다고 하여 삭탈을 당한 뒤, 도순무영(都巡撫營)에서 백의종군하였다.
그 뒤 1734년(영조 10) 평안도사로 임명되었는데, 호서어사로 있을 때의 일이 문제가 되어 물의가 있었다. 이듬해에 헌납이 되었고, 1738년(영조 14)에 장령·사간이 되었다.
1739년 집의로 있다가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파견되었으며, 임무로 『명사(明史)』 전질을 사오도록 하였다. 동지사에서 돌아와 다시 사간·집의·보덕·사간·집의가 되었다가 1741년(영조 17)에 승지가 되었으며 1745년(영조 21)에 대사간이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