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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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이칭
  • 우화(雨華)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2년(고종 9)
  • 출생지함경북도 회령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영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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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우화(雨華). 함경북도 회령 출신. 1894년 청나라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왔을 때 위안스카이의 통역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뒤 동북 만주로 이주하였다.

1910년 이후 만주로 건너온 안창호(安昌浩)·이동휘(李東輝)·안중근(安重根) 등 애국지사 수백 명을 자택에서 기숙하게 하였고, 제1회 대한국민회총회를 개최하여 교포들의 생계유지책을 논의하였다. 이 후 연길도윤공서(延吉道尹公署) 외교부(外交部)에 근무하였다.

만주에 대한 중국법령이 공포되어 교민의 토지가 몰수될 지경에 이르자, 총통 위안스카이를 방문하여 그 법령을 철회하게 하고 간민(墾民)이라는 이름으로 한인의 토지소유를 합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자신의 집을 간민회관(墾民會館)으로 기증하기도 하였으며, 간도 전역에 중·소학교(中小學校) 70여 개를 세워 인재양성과 교민보호에 전력하였다. 1940년 용정(龍井)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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