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돕고, 간도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교민 보호에 힘쓴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이후 만주로 건너온 안창호(安昌浩)·이동휘(李東輝)·안중근(安重根) 등 애국지사 수백 명을 자택에서 기숙하게 하였고, 제1회 대한국민회총회를 개최하여 교포들의 생계유지책을 논의하였다. 이 후 연길도윤공서(延吉道尹公署) 외교부(外交部)에 근무하였다.
만주에 대한 중국법령이 공포되어 교민의 토지가 몰수될 지경에 이르자, 총통 위안스카이를 방문하여 그 법령을 철회하게 하고 간민(墾民)이라는 이름으로 한인의 토지소유를 합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자신의 집을 간민회관(墾民會館)으로 기증하기도 하였으며, 간도 전역에 중·소학교(中小學校) 70여 개를 세워 인재양성과 교민보호에 전력하였다. 1940년 용정(龍井)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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