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중(道仲). 이상백(李相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필(李廷弼)이다. 아버지는 이인휘(李寅徽)이다.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우윤(右尹)에 이르렀다. 1757년(영조 33) 검열이 되었다. 1761년(영조 37) 정언으로 있을 당시, 황경원(黃景源)의 심문요청과 관련하여 진도군에 투비(投畀: 왕명으로 죄인을 지정한 곳에 귀향을 보냄.)되었다.
3년 후 복직되어 장령·집의·사간을 역임하였는데, 1768년(영조 44) 송재경(宋載經)의 일로 소를 올려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자, 왕은 소를 돌려주고 도성 밖으로 내쫓을 것을 명하였다.
그 해 9월 보덕에 다시 임명되었다가 장흥부사가 되었는데, 장흥의 세선(稅船)이 고의로 파손되었다는 이유로 유배되었다. 1775년(영조 51) 승지가 되었고, 1781년(정조 5) 초산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