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천(希天). 이태수(李泰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도익(李道翼)이다. 아버지는 이시서(李時敍)이며, 어머니는 심구준(沈耉浚)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이듬해 정언으로 옹주(翁主)의 가례 때에 절약할 것을 청하여 국왕의 신임을 받았다. 이어 지평·정언이 되었고, 다시 언로를 열어 공평한 정치를 행하라는 소를 올렸다.
1768년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표류인에 대한 보고를 늦게 했다 하여 파직을 당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복직이 되어, 겸필선·부응교·교리·응교·집의가 되어 『증보문헌비고』의 편찬에 관여하였다. 1770년에 사간·보덕·집의가 되었고, 1772년에 승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