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첨(伯瞻). 이완(李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징(李麟徵)이다. 아버지는 이혼(李混)이며, 어머니는 윤이풍(尹以豊)의 딸이다.
1768년(영조 4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66년(영조 42) 국왕이 숭정전(崇政殿) 에서 유생을 시험하여 서울과 시골에서 각각 1인씩을 뽑았는데, 이 때 지차(之次: 2등)를 했으므로 곧바로 회시(會試)에 나아가게 하였다.
1770년 사도세자의 죽음에 김치인(金致仁)도 책임이 있다는 최익남(崔益男)의 상소를 미리 빌려다 보았다는 이유로 진도군(珍島郡)에 정배되었다가 1800년(정조 24)에 가서야 1등급을 감하여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