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대사간,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설해(雪海)
  • 춘장(春長)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672년(현종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대사간|평안도관찰사
  • 출생 연도1604년(선조 3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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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대사간,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춘장(春長), 호는 설해(雪海).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견철(李堅鐵)이고, 어머니는 정응창(鄭應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죄 당하였고, 2년 뒤에 사간이 되었다.

1648년 청주목사로 재직 중 술을 좋아하다 추고(推考)당하여 함안군 춘곡역(春谷驛)에 유배되었다. 1651년(효종 2) 집의로서 진향사(進香使)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간이 되었으나, 1654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을 비호하다가 명천에 유배되었다.

2년 뒤에 직첩(職牒)이 환수되었고, 1659년 보덕으로 재기용된 이래 사간·강원도관찰사·소결청당상(疏決廳堂上)·대사간 등을 거쳐 1671년 (현종 12) 예조참판에 승진하였으며, 같은 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재직 중 죽었다. 저서로는 『설해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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