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지 ()

산업
유적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 전기에 축조한 수리 시설.
이칭
이칭
경양지(慶陽池), 경양방축(景陽防築), 경양언(景陽堰), 경양제(景陽堤), 금교방축(金橋防築), 금교제(金橋堤), 경호(鏡湖), 서방지(瑞坊池), 영지(影池)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김방(金倣)
면적
216,257㎡
소재지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양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 전기에 축조한 수리 시설이다. 경양지 둑에 나무가 우거져 지역민들이 노닐며 구경하는 곳이 되어 여러 시문이 전하며 명칭도 10여 개 이상이 있다. 둘레는 5,560자이었다. 1937년 15만 515㎡가 매립되었고, 1968년 나머지도 매립되어 택지가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광주목 42개 제언 가운데 가장 큰 수리 시설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있던 조선 전기에 축조한 수리 시설.
건립 경위

경양지(景陽池)의 축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 온다. 고대 축조설은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조선 전기설은 세종 대에 김방(金倣)이 수축하였다는 내용으로 그 시기는 세종 대(1418~1450) 또는 1440년(세종 22)이나 1441년(세종 23)이다. 김방은 광주목(光州牧)의 실존 인물로 지김제군사(知金堤郡事) 등을 지냈고 토목공사를 잘하여 벽골제(碧骨堤)를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경양지 수축도 연계한 것 같다. 그런데 김방이 경양지를 수축하였다는 기록은 관찬 자료나 지지류, 개인의 시문 따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13년 『수리에 관한 관습』이나 1933년의 『광주군사』에 세종 대 김방 축조설이 나오는데 구전 내용을 기록한 것 같다. 조선 전기 세종 대 수축설은 지역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근거가 될 만한 유적이나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선 전기설은 임진왜란 이전에 수축하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이 경양역 주1 국보(國保)의 청에 따라 지은 시에 연못이 언급된 점, 1604년(선조 37) 계음(溪陰) 조팽년(趙彭年: 15491612)의 시에 경양제(景陽堤)가 언급된 점 등으로 보아서 임진왜란 전쟁기 이전에 수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1624년(인조 2)의 광주목사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 15751638)이나 장성부사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 1568?)의 시에서도 경양방축(景陽防築), 경양언(景陽堰) 표기가 있어 이 시기에 실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변천

경양지는 수리 시설이지만 둑방길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 지역민들이 노닐며 구경하는 곳이 되어 많은 시문이 전한다. 1937년 택지조성을 위해 15만 515㎡가 매립되었다. 지역민의 위락 공간으로도 활용되었으며 겨울철이면 스케이트장으로도 썼다. 1968년에는 나머지도 매립하고 시가지가 되었다.

형태와 특징

『여지도서(輿地圖書)』(1759)에 둘레 주2, 수심 1자 4 로 나오며 1872년(고종 9) 광주목 지도에서는 장타원형 형태이다. 1918년 지형도에는 부채꼴 형태이다. 1910년대 지적원도에서 표기한 면적은 21만 6257㎡이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시대 광주목 42개 제언(堤堰) 가운데 가장 큰 수리 시설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경양지(慶陽池), 금교방축(金橋防築), 금교제(金橋堤), 경호(鏡湖), 서방지(瑞坊池), 영지(影池) 등 10여 개의 명칭이 있고 여러 문인의 시문 등에 나와 광주의 문화경관 명소로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여지도서(輿地圖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단행본

『경양방죽과 마을사람들』(광주시 동구 계림1동·추억이 깃든 경양마을 만들기 주민협의회, 2011)
김홍삼, 『경양방죽의 역사』(제일문화사, 1968)

논문

변동명, 「조선시기 광주 경양방죽의 수축과 운영」(『국학연구논총』 21, 택민국학연구원, 2018)
이옥희, 「경양방죽 설화의 전승 담론과 서사 전략」(『호남문화연구』 64,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8)
김희태,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본 광주 경양지」(『향토문화』 27,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7)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각 도의 역참 일을 맡아보던 종육품 외직(外職) 문관의 벼슬. 중종 30년(1535)에 역승을 고친 것으로 공문서를 전달하거나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우리말샘

주2

길이의 단위. 한 자는 한 치의 열 배로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집필자
김희태((前)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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