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광주고등학교·계림초등학교와 전 광주상업고등학교의 정문 앞에서부터 부채꼴모양으로 벌어진 남서쪽 일대의 인공 연못이 바로 그 자리이다. 제방의 길이는 300m, 저수면적은 40여ha이며, 저수량과 몽리(蒙利:저수지나 보 등 수리시설의 혜택을 받는 것)면적은 미상이다.
『광산읍지』에 따르면 축조연대는 세종 때 김방(金倣)이라는 부호가 자기 농토에 물을 대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 한다. 김방은 1418년 벽골제 중수 책임자로 김제군사(金堤郡事)를 역임한 사실이 있을 뿐 아니라, 『낙안읍지(樂安邑誌)』에 기록되어 있는 김방이 노후에 낙안읍 고읍리(古邑里)에 은거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수리사업에 대한 경험이 있는 그가 경양지를 축조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 경양지 축조에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김방이 물을 무등산에서 끌어올 계획이었으나, 중간에 깨재[荏峙]를 직통하기가 난감하던 중, 하루는 꿈속에 한 늙은 신선이 나타나 광산천에 보(洑)를 막고 물길을 내어 물을 끌어들이라 하므로, 다음날 새벽에 신선이 일러준 곳에 가보니 괴이하게도 서리가 흰 베처럼 깔려 있어, 그를 따라 물길을 내고 경양지에 물을 저류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설은, 광주 효천면(孝泉面)에 살던 인색한 김부자에게 박경양(朴景陽)이라는 가난한 총각이 흉년에 곡식을 빌리러 갔다가 김부자에게 얻어맞아 죽었는데, 그에 충격을 받고 박경양의 노모마저 따라서 죽었다.
그 노모의 원귀가 김부자의 꿈에 현몽하여 곡식을 품삯으로 주고 많은 사람을 풀어 그곳에 못을 파도록 위협하므로, 김부자가 저수지를 축조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김부자를 김방으로 해석하면 두 전설은 서로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래서 박경양의 이름을 따서 경양지라 하였으며, 이 경양지가 없어진 것은 1970년경으로, 현재는 주택지가 되었고, 그 일부에는 광주광역시청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