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웅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연안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몽탄(夢灘)
  • 심보(心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 사망 연도1661년(현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연안부사|충청도관찰사
  • 출생 연도1620년(광해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반윤홍 (조선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만웅 글씨 미디어 정보

이만웅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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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연안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심보(心甫), 호는 몽탄(夢灘). 부정자 이기준(李耆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이중기(李重基)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이행건(李行健)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대후(沈大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9년(인조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0년 뒤 재랑(齋郎)을 제수받았으며, 1649년(효종 즉위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를 출입, 응교(應敎) 재임 시에 효종의 특명으로 동래부사가 되었다.

현종 초에 임지인 동래에서 왜인으로 호시(互市)를 하는 자가 예전대로 징구(徵求)하여 이만웅이 이를 물리치자, 왜인들이 관(館)을 떠나 부산진에 들어가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왜인들의 방자한 행위에 대하여 이만웅은 무력으로 진멸시키며, 도중(島中)에 격서(檄書)를 보내어 경계시킬 것을 청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장계가 조정에 이르자 놀라, 광폭한 계책으로 여기고 이만웅을 불러 정질(廷叱)하였다. 그러나 곧 연안부사에 제배되었고, 1661년(현종 2)에는 승진되어 충청도관찰사에 부임하였으나 이 해에 죽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호보(號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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