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웅 ()

이만웅 글씨
이만웅 글씨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연안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심보(心甫)
몽탄(夢灘)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0년(광해군 12)
사망 연도
1661년(현종 2)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연안부사|충청도관찰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연안부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심보(心甫), 호는 몽탄(夢灘). 부정자 이기준(李耆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이중기(李重基)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이행건(李行健)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대후(沈大厚)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9년(인조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0년 뒤 재랑(齋郎)을 제수받았으며, 1649년(효종 즉위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를 출입, 응교(應敎) 재임 시에 효종의 특명으로 동래부사가 되었다.

현종 초에 임지인 동래에서 왜인으로 호시(互市)를 하는 자가 예전대로 징구(徵求)하여 이만웅이 이를 물리치자, 왜인들이 관(館)을 떠나 부산진에 들어가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왜인들의 방자한 행위에 대하여 이만웅은 무력으로 진멸시키며, 도중(島中)에 격서(檄書)를 보내어 경계시킬 것을 청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장계가 조정에 이르자 놀라, 광폭한 계책으로 여기고 이만웅을 불러 정질(廷叱)하였다. 그러나 곧 연안부사에 제배되었고, 1661년(현종 2)에는 승진되어 충청도관찰사에 부임하였으나 이 해에 죽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송자대전(宋子大全)』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호보(號譜)』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