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빈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수찬, 평안도암행어사, 안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문(士文)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지평|수찬|암행어사|안주목사
  • 출생 연도1722년(경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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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수찬, 평안도암행어사, 안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문(士文). 이준(李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겸저(李謙著)이다. 아버지는 이정(李淨)이며, 어머니는 심익성(沈益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5년(영조 41)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1764년(영조 40)에 국왕이 친림하여 시사(試士)할 때에 5인 중에 뽑혀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했다. 1766년에 정언이 된 뒤, 이듬해에 사서(司書)에 올랐다.

이어 지평·수찬이 되었다가 1769년에 헌납이 되었다. 이듬해 수찬·필선이 되었다가 동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71년에 평안도 암행어사가 되었다가 헌납이 되었다.

1772년에 집의로 있을 당시 입시하여 강관(講官: 경연에 나아가 임금에게 강의하던 관리)이 되었는데, 송명흠(宋明欽)을 논하지 않았다 하여 갑산부에 귀양을 갔다. 일 년 후 풀려나서 안주목사가 되었다가 승지가 되었으나, 다시 회양부로 귀양 갔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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