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단 등을 조직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 동만주 총판부 참사, 국민회군 지휘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3월 20일 황병길(黃丙吉)과 주동하여 훈춘의 동문과 서문 사이 도로에서 2600여 명이 참가하는 독립선언시위운동을 일으켜, 관내 47개소에서 1만 5080여 명의 교민이 참가하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회원 2만 1000여 명을 헤아리게 된 훈춘 대한국민회 회장으로서, 북간도 한인사회의 자치와 민족 교육, 독립운동을 벌여 온 간민회(懇民會)가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 확대, 개편되는 과정 중 이와 합작하였다. 이후 대한국민회가 북간도 4현에 거주하는 40만 교포사회에서 80여 지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한, 대한국민회 밑의 국민회군이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 최명록(崔明錄)의 군무도독부군(軍務都督府軍)과 제휴하여 무력 항일투쟁을 전개하자 이에 참여, 활약하였다. 그 해 9월 장차 독립 항일전을 강력히 수행하기 위해 북간도 방면의 각 독립 단체 대표들과 훈춘 사도구(四道溝)에서 만나 결사대를 조직, 무력투쟁을 결의하였다.
1920년 10월 상해임시정부 동만주 총판부(總辦部) 조직에 참여하여 참사(參事)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청산리대첩 후 밀산(密山)으로 철수하였다.
노령(露領)으로 옮기기 전 각 독립군단의 통일체인 간도대한국민회 대표로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고, 국민회군 지휘관으로 휘하 병력 700여 명, 장총 700여 자루, 기관총 4문으로 무장한 뒤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 끝에 많은 전과를 올리다 끝내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국독립운동사』Ⅰ(한국일보사, 1987)
- 『독립운동사』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한국독립운동사』3(국사편찬위원회, 1968)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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