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판돈녕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91년 조흘강시관(照訖講試官)으로 임명된 윤영희(尹永僖)가 시험에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혐의로 의금부에 하옥되었을 때, 의금부당상으로서 치죄를 잘못하였다 하여 파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형조판서로 기용되어 내직에 임명되었다.
도총관을 거쳐 1795년 정1품인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랐다. 음관(蔭官)으로서 보국숭록대부에 오른 것은 조선 초의 황희(黃喜)의 아들 황수신(黃守身)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 뒤 노인직으로 판돈녕부사 · 판중추부사의 자리에 있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저서로는 『풍서집』 18권과 노론의 시각에서 당쟁을 논한 『충역변(忠逆辨)』이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풍서집(豊墅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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