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천문시계인 수격식 선기옥형을 제작한 기술자. 과학기술자.
생애 및 활동사항
1664년(현종 5) 왕명으로 관상감에 들어가 송이영(宋以穎)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누국(漏局)의 천문시계들을 개조하여 1666년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크게 승진, 이때부터 과학자로서의 위치가 뚜렷해졌다.
1669년에는 세종 이래의 전통을 계승한 새로운 수격식(水激式) 선기옥형을 제작하였는데, 이 천문시계에는 사유옥형(四遊玉衡) 대신 지구의(地球儀)를 남북의 두 극축(極軸)에 연결하여 혼천의의 중심에 넣음으로써 지전설(地轉說)을 입증하였다.
이 천문시계는 송이영이 만든 추동식(錘動式) 기계장치의 천문시계와 함께 조선과학사의 뚜렷한 업적으로 남았다. 이 공로로 1674년에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680년(숙종 6)에 이주첨사(伊州僉使)·이성현감(利城縣監)·영월군수·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687년에는 현종대에 만들었던 선기옥형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기 시작하여 그 다음 해 5월에 완성,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남쪽에 제정각(齊政閣)을 지어 이를 설치하였다. 또한, 1683년에는 성능이 좋은 수차를 만들어 관개에 이용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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