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원주목사, 형조참의,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정언이 되어 훈신의 비위사실을 탄핵하였고, 이어 곡산군수·광산현감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종묘령(宗廟令)으로 묘주(廟主)를 모시고 강도(江都)에 호종하였다.
그 뒤 사복시정·장악원정·원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1635년 충청도토포사(忠淸道討捕使)로 나가 도적들을 소탕하여 그 공으로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1636년 비변사의 추천으로 황해도감사에 특진되어 비어대책(備禦對策)에 진력하였고, 특히 해주·재령에 산성을 쌓고 군량을 많이 저장하여 병자호란 때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듬해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되어 청 태종이 돌아갈 때에 조정에서 이배원에게 대접을 잘하라는 명이 있었으나, “진감사(眞監司)가 가황제(假皇帝)에게 대접할 수 있겠는가.” 하고 청진(淸陣)에 대한 접대를 소홀히 하여 파면당하였다. 뒤에 다시 서용되어 형조·공조의 참의 등을 지냈다.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귀휴당집(歸休堂集)』3권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귀휴당집(歸休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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