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숙한(叔翰). 아버지는 참군(參軍) 이수회(李壽會)이며, 성리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이언적(李彦迪)의 아버지이다.
성종은 문학을 즐겨하여 전국 관찰사에게 명하여 도내 유생으로 하여금 제술을 지어 올리도록 하였는데, 이번은 경주교생으로서 1493년(성종 24)에 시(詩)·부(賦)에서 2등하고, 제술에서 수거(首居)하였다.
성종으로부터 이번의 글이 인정되어 궐내로 들어가 다시 시부를 제진하는 영광을 받기도 하였다. 1495년(연산군 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생원이 되고 성균관 유생으로 수학하다가 죽었다. 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