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증식

  • 언론·출판
  • 인물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영업국장, 조선일보 영업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경기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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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영업국장, 조선일보 영업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

내용

경기도 출생. 보통학교 졸업 후에 독학으로 공부했다. 1915년부터 1920년 사이에는 주로 북경에 체재하면서 서울, 상해 등지를 왕래하여 이시영(李始榮)·이동녕(李東寧)·조성환(曺成煥) 등과 접하며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2월 노동문제연구회에 참가하였고, 4월에는 조선노동공제회 창립회원으로 교육부 간사를 맡았다. 1921년 1월 서울청년회 창립위원, 1921년 3월 조선노동공제회 총간사를 맡았는데 이 해 9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영업국장으로 재직하다가 1924년 5월 이상협과 함께 퇴사하여 1925년 조선일보 영업국장을 지냈다.

그 동안인 1925년 4월에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이 되기도 하였다. 1934년 6월 여운형이 조선중앙일보를 주식회사로 만들면서 취체역 영업국장이 되었다. 광복 후 ≪조선인민보≫를 인수했는데 이 신문은 신탁통치를 찬성했다가 우익 청년 데모대의 습격을 여러 차례 받았다.

1946년 3월 26일에는 일부 서울시민들이 식량 배급을 청원하는 기사를 선동적으로 다루었다가 홍증식과 편집국장 김오성(金午星)이 구속되어 9월 5일 군정재판에서 3만원 벌금에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그 후 월북하여 1948년 8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57년 6월에는 제2기 대의원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인물한국언론사』(정진석, 나남출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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