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이씨 족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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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이영도가 주관하여 도산서원에서 간행한 진성(진보)이씨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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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문신 이영도가 주관하여 도산서원에서 간행한 진성(진보)이씨의 족보.
내용

퇴계 이황(李滉)의 손자 이영도(李詠道)의 주관아래 종중의 이정회(李庭檜) · 이형남(李亨男)등이 자료수집과 교정 및 간역사업을 담당하였다.

퇴계 문인 김륵(金玏)오운(吳澐)의 서문을 받고 퇴계문집 편간을 주관했던 조목(趙穆)의 주선으로 문집판각에 동원되었던 각수와 남은 자재를 활용하여 발간한 것으로 일명 ‘진성이씨 도산보(陶山譜)’ 또는 ‘진성이씨 경자보(庚子譜)’라 하기도 하였다. 3권 1책, 사주쌍변, 유계, 반엽 10행 20자, 주쌍행, 내향이엽화문어미, 선장이다.

이 족보의 편간 경위를 살펴보면, 퇴계가 손수 기록한 보계(譜系)와 그 아들 안도(安道)가 속찬한 보략(譜略)을 갖고 다시 자료를 넓게 수집하고 탐방과 검증을 거쳐 정자 · 주자의 세보원류도(世譜源流圖)를 모방, 편간하였는데 그 주선한 인사는 조목 · 유성룡(柳成龍) 등 퇴계 문인과 퇴계 직손 및 방손들이었다. 내용 목차는 김륵과 오운의 서문이 있고 그 다음 제1권 · 2 · 3권이 천자문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보도(譜圖)는 매면 5층의 횡간안에 제1대 시조 이석(李碩)에서 시작, 그 12대손까지 각 세대마다 자녀는 출생순으로 배열하고 자와 녀(사위) 및 그 내외손들의 계보를 남녀구별 없이 같은 비중으로 기재하였다.

친손계는 성자를 생략하고 외손계는 성명을 다 적고 관직이 있는 자는 관명을 적었으며 명조(名祖)에 한해 관직 · 생몰년월일 · 거주지 · 처계 · 묘소가 주기되어 있을 뿐 기타 지손들과 무명인사들은 이름과 성명만 기재하였다. 내외손계를 막론하고 무후(無后)가 많으며 서얼계는 서자(庶字)로 주기하였다.

진성이씨는 경상도 진보(眞寶)현 토성(土姓)의 하나로 고려 말까지 본관의 향역을 세습해오다가 시조격인 이석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장자 자수(子脩)계는 고려 말 사족이 되면서 안동으로 이주하여 안동 또는 영주 · 예안(禮安)파가 되었는데 이 3파가 주로 족보에 등재되었고 차자 자방(子芳)계는 본관의 향역을 세습하는 이족(吏族)으로 본보에 실리지 않았다.

이 족보는 퇴계의 6대조인 시조부터 그 시조의 12대손인 퇴계의 현손까지 기재되어 있으며 세대수로는 12세대, 연수로는 14세기 후반에서 17세기초까지 약 300여년에 걸쳐 살았던 진성이씨 이족계가 제외된 사족계가 등재되었다.

16세기 중반 이래 서원의 창설과 함께 해당서원의 주향자의 조상세계와 그 후손들의 족도(族圖)를 정리하는 취지에서 도산서원의 설립과 함께 그 주향자인 퇴계의 문집 간행이 끝난 뒤 그 각수와 남은 자재를 활용하여 이 족보를 발간하였는데, 당시 족보의 간행이 대개 그 내외후손 중 외관들의 주선으로 관변의 자재와 관청의 힘을 빌려서 성취되는데 반해, 이 족보는 순전히 퇴계의 문인과 그 직손 · 방손들에 의해 편간된 사보였다.

참고문헌

「조선전기 성관체계와 족보의 편찬체제」(이수건,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 상,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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