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안동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정제장으로 활동한 학자·의병.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직접 정제장(整齊將)이 되어 김득연(金得硏)과 의창(義倉)에 양식을 가득하게 모아 놓고 의병(義兵)과 관군(官軍)에게 제공하였다. 이 소문이 부근에 알려지자 도망간 병사들이 모여 들고 인심이 안정되어 왜적들이 감히 안동(安東)으로 침입하지 못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은 이 때 안동이 무사한 것은 이형남이 이끈 향병(鄕兵)의 힘이었다고 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 도사(都司) 설호신(薛虎臣)이 안동에 잠시 주둔한 적이 있었는데, 그 종사(從事) 장무덕(張懋德)·진천총(陣天寵)·주공유(朱孔儒) 등이 군량미 조달을 위하여 이형남의 향병(鄕兵)과 의창(義倉)을 방문하여 보고서 감탄하기도 했다. 1600년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송계문집(松溪文集)』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 『송계문집(松溪文集)』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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