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통례원인의, 사헌부감찰, 횡성현감, 군자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송간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86년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가 되고, 이듬 해 진사정사(陳謝正使) 배삼익(裵三益)의 보좌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0년 사온서주부(司醞署主簿)를 거쳐 사헌부감찰로 옮겼으며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서훈되었다.
이듬 해 횡성현감으로 나가 학교를 수리하여 학문을 진흥시키고, 군사를 훈련하여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아 여러 곳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듬 해 군자판관(軍資判官)이 되었다.
1597년 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의흥현감이 되어 난리수습에 공이 많았다. 뒤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옥동서원(玉洞書院)을 세워 스승 이황을 제향하고, 지남서당(芝南書堂)을 지어 후진을 교육하였다. 1609년 선조의 구언에 따라 6조의 소를 올려 시폐의 개정을 건의하였다.
정구(鄭逑)가 지남서당에 들렀다가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아서 다 수용하지 못한 것을 보고 물자를 지원하여 송간재(松澗齋)를 지어 학자들을 수용하게 하였다. 저서로는 『송간문집(松澗文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송간문집(松澗文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