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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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첨지중추부사 ·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죽계(竹溪), 죽유(竹牖)
  • 태원(太源)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창(高敞)
  • 사망 연도1617년(광해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주목사|합천군수|첨지중추부사|장례원판결사|경주부윤
  • 출생 연도1540년(중종 35)
  • 출생지함안(咸安)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석희 (부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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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첨지중추부사 ·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창(高敞). 함안 출생. 자는 태원(太源), 호는 죽유(竹牖) · 죽계(竹溪). 의령현감 오석복(吳碩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의현감 오언의(吳彦毅)이고,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安氏)로, 부호군(副護軍) 안관(安瓘)의 딸이다. 이황(李滉) ·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의 학유(學諭) · 학정 · 박사 · 전적(典籍) · 직강(直講)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충주목사 겸 편수관(編修官)을 거쳐, 사성(司成)을 지낸 뒤 사재감정(司宰監正)이 되고, 1589년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나갔다가 해직되었다. 1593년 상주목사가 되고, 이듬해 합천군수를 지냈다.

1599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장례원판결사에 승진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608년 다시 기용되어 경주부윤이 되었으며, 1616년(광해군 8) 공조참의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이 때 시정득실(時政得失)을 진술하였다.

저서는 『죽유문집』이 있고, 편서는 『동사찬요(東史纂要)』가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학소집(鶴少集)』

  • - 『용사열록(龍蛇列錄)』

  • - 「17세기초의 역사서술」(한영우, 『한국사학』6,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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