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 출신으로, 출생 연도는 미상이나, 1899년 출생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명은 박인각(朴仁恪), 박인식(朴仁植)으로 추정된다.
1920년 2월에 서간도(西間島) 관전현(寬甸縣)의 대한독립단 단원 백운한(白雲翰) 등 3인이 국내로 특파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 원봉동(圓峯洞)으로 들어가 유지 박인혁(朴仁赫)에게 군자금을 청구해 받아갔다.
이어서 3월 15일 대낮에 대산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수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의 행동을 밀고해온 죄를 물어 면장 김병준(金炳駿)과 면서기 김은기(金殷基)를 총살하고 공금을 탈취한 후 사라졌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박인혁의 아우 박인식(朴仁植)이 독립단원들에게 김병준 살해를 부추기고는 사건 직후 종적을 감추었다고 보고 즉시 수배하였다. 처음에는 박인식의 이름이 박인항(朴仁恒)으로, 그 다음에는 박인환(朴仁桓)으로 잘못 알려져 보도되기도 하였다.
1921년 3월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의 결석재판에서 박인식은 공소사실 인정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박인각(朴仁角)은 이 사건의 다른 관련자로 수배되었다가 1931년 8월 상하이[上海]에서 체포된 박규명(朴奎明)의 재판 관련 기사에 “1920년 살인 교사죄로 송국되었고 옥사”한 인물로 언급되었다. 그래서 박인식과 박인각은 동일인이며, 전자는 후자의 이명이었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붙잡혔고 언제 옥사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