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국은 일제강점기, 서울 부민관 투탄의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에서 항일노동운동을 벌이고 귀국하여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45년 7월 일제의 앞잡이 박춘금의 주도로 개최되는 선전극인 아세아민족분격대회 개최 장소인 경성부민관에 침투하여 미리 폭탄을 장치해놓고 대회 현장에서 터뜨리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대회는 혼란에 빠지고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였고,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의열투쟁의 대미를 이루었다.
1926년 9월 28일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태어났다. 10대 중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생활하였다.
1943년 5월 가나카와현[神奈川縣] 가와사키시[川岐市]에서 조문기(趙文紀)와 함께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의 훈련공 차별과 모욕에 항의하는 태업과 파업 및 농성 투쟁을 주도하였다. 두 사람은 1945년 1월 같이 귀국하여 동지를 은밀히 규합하면서 또래의 유만수(柳萬秀), 우동학(禹東學), 권준(權俊)을 포섭하고 5월에 서울 관수동(觀水洞) 유만수의 집에서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였다.
1945년 6월 24일에 폭력배이던 박춘금(朴春琴)의 주도로 항일, 반전 사상을 격파하겠다는 취지의 대의당(大義黨)이 결성되어, 7월 24일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 대강당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를 개최한다고 알려졌다.
정원간(丁元幹)과 정유분(鄭維芬)을 중국의 친일 남경정권(南京政權) 대표로, 동춘전(董春田)을 만주국(滿洲國) 대표로, 다카야마 도라오[高山虎雄]를 일본국 대표로 내세웠다. 일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이른바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수행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구하려는 기만적 선전극이었다.
강윤국(康潤國) 등 애국청년당원들은 이 대회를 조선총독(朝鮮總督) 및 조선군사령관 제거 기회로 삼기로 결의하고 실행계획을 세웠다. 유만수가 경의선 수색(水色)의 변전소 작업장에서 얻어낸 다이너마이트에 양철을 씌워 도화선식 폭탄 2개를 만들었다.
당원들은 7월 23일 심야에 부민관 건물로 미리 잠입하여, 대강당으로 나가는 통로 옆의 신발장과 아래층 변소에 1개씩의 폭탄을 장치하였다.
예정대로 7월 24일 저녁에 열린 대회에서 애국청년당원들은 일본 대표 다카야마가 연설 중이던 9시 10분경에 폭탄을 터뜨렸다. 장내는 일대 혼란에 휩싸였고, 일경이 황급히 달려왔지만 재빨리 빠져나간 강윤국 등은 잡히지 않았다.
이 거사(擧事)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대의당의 의도는 무산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의열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쾌거였다.
1977년 건국포장(建國褒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