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자는 중민(仲敏), 호는 경무(耕無)이다. 1878년 8월 2일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김영하(金榮夏)이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피탈(被奪)되자 가사를 정리하고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의 유학자인 족형(族兄) 김제환(金濟煥)을 찾아갔다. 둘은 항일의 길에 같이 나서기로 결의하였다.
두 사람은 민적(民籍) 편입, 토지 측량, 호세(戶稅) 및 지세(地稅) 납부, 각종 부역 동원을 일절 거부 또는 방해하였고, 관공리(官公吏)가 살피거나 독촉하러 오면 몽둥이를 휘두르며 쫓아내곤 하였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구금당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집행되는 관헌의 재산 압류를 10여 차례나 당하였다.
이렇게 매서운 의기를 보여주던 김정환도 김제환이 3년의 옥고 끝에 1916년 출옥한 후, 입산 단식으로 절사(節死)한 데 충격을 받았다.
1919년 3월에는 충청북도 청원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27년 자신의 처자(妻子)가 잡혀가 구금되기까지 하자 지극한 분노로 1927년 11월 2일 목을 매 자결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