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동몽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에 대한 국가의 조치는 주로 장권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 장권조의 규정에 근거하여, 사사로이 자신의 서재나 서당에서 동몽들을 가르치던 선생인 사교동몽훈도(私敎童蒙訓導)들에게 서반[군직] 체아직(遞兒職)을 하사하여 명예와 함께 체아록(遞兒祿)을 지급하여 생계를 보조해 줌으로써 교육활동을 장려하였다. 이때 내려진 체아직은 입사(入仕)의 의미는 없었다. 17세기 이후의 문헌에는 이들을 사교(私敎) 혹은 사교관(私敎官)이라고 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16세기 동몽훈도는 이전 시기 장권규정을 변통하여 제정된 교관직이었다. 중종 11~12년에 동몽훈도 직제 마련을 논의가 집중적으로 진행되어 실행되었고, 명종대 「경외학교절목(京外學校節目)」에서 동몽훈도 관련 규정이 정비됨으로써 그 법제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조선의 동몽교육 담당 교관정책은 일관된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16세기 동몽훈도는 예조 소속의 관원으로 음사(蔭仕)의 계제(階除)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15세기 체아직으로 서용된 교관들과는 관제상 질적으로 다른 지위를 가진 관직이었다.
따라서 16세기 국가정책의 핵심적 기조는, 대전의 장권조항에서 사적으로 교육활동을 하던 훈장에 대한 포상규정을 연원으로 하여 동몽훈도라는 새로운 교관직제를 마련하고, 이들이 가르치던 서재와 서당인 동몽학(童蒙學)을 서울의 사학(四學) 이하의 공식적 학교체제 속으로 포섭하려는 데에 있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이들을 통해 경학을 위주로 한 『소학』 중심의 학풍을 동몽단계의 교육부터 실질적으로 강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그리고 한성의 동몽훈도의 규정에 준하여 지방에서는 면 단위 이하의 교육을 위해 학장제가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동몽훈도와 학장은 16세기 성균관과 사부학당, 그리고 향교 아랫단위의 교육을 위한 한성과 지방의 교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9품직 동몽훈도가 6품직으로 격상되고 명칭도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개칭되어 개항기까지 계승되었다.
동몽훈도와 학장제는 성균관과 사부학당, 그리고 지방의 향교로 이어지는 국가의 관학(官學) 체제와 서당과 서원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사학(私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국가가 직접 면단위 이하의 학교를 건립하고 직접 운영할 수 없는 조건에서 기존의 사학(私學)을 국가의 관학체제와 제도적 관련을 맺을 수 있도록는 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그러므로 조선 한성의 각 부와 지방의 조선 전후기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연속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교관제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