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이칙(彛則), 호는 정수재(靜修齋). 이단하(李端夏)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악진(李岳鎭)이다. 아버지는 이연(李演)이며, 어머니는 남유상(南有尙)의 딸이다.
1773년(영조 49) 진사시를 거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당시 영의정 한익모(韓翼謨)의 주청으로 6품에 올랐다. 경기지방·관동지방을 암행하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김상로(金尙魯)의 죄를 탄핵하였다. 이조좌랑·대사간·예조참의를 거쳐 이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1779년(정조 3) 운산에 유배되고, 1781년에는 사판(仕版)에서 제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특서(特敍)되어 국조보감찬집당상(國朝寶鑑纂輯堂上)·우부승지·동래부사·대사간 등을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인 1784년에 『돈효록(敦孝錄)』을 간행하였다. 이어 대사성·이조참판·예조판서·형조판서·호조판서·병조판서·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함경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794년 우의정에 임명되고, 좌의정을 거쳐 1799년 영의정이 되었다.
그동안 1778년 동지부사(冬至副使), 1795년 진하사(進賀使) 등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1800년에도 책봉주청사(冊封奏請使)로 사행(使行) 중에 정조의 상을 당하였다. 순조가 즉위하자 실록총재관에 임명되고, 1803년(순조 3)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