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헌납(獻納) · 교리 · 승지 · 대사간 · 이조참의, 예조 · 병조 ·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1772년 당시 대제학으로 현종의 상호(上號)를 지어 바치고 영조에게서 호피(虎皮)를 상으로 받았다. 1773년 한 때 사직했으나, 이듬 해 다시 이조참판으로 증광시 시관(試官)에 임명되고, 1775년 형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영조의 행장 · 시장(諡狀)을 찬술하기 위한 찬집청(撰集廳)의 당상에 임명되었고, 영조의 시책문(諡冊文)을 지어 바쳤다. 우참찬 · 병조판서 · 명의록찬집당상(明義錄纂輯堂上) · 형조판서 · 규장각제학 등을 거쳐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으나, 관아를 비웠다 하여 강화유수로 좌천되고 이어 사형수의 자살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다시 1780년(정조 4) 이조판서에 제수되고 형조판서 · 우의정 · 좌의정 · 판중추부사 ·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 · 세자부(世子傅) · 영중추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 동안 1783년 심양문안사(瀋陽問安使), 1790년 동지 겸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783년 종부시에서 간행한 『선원계보기략팔고조도(璿源系譜紀略八高祖圖)』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문장에 능해 이치를 주로 했고, 특히 사명(詞命)에 뛰어나 정조가 신설한 규장각에서 활약하였다. 김익(金熤)과 동시에 재상에 임명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소박한 선비 차림이었고 행실이 독실해 당시 유상(儒相)으로 불렸다 한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저서로는 『천령향함이지락(千齡享含飴之樂)』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