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방언(邦彦), 호는 송벽당(松蘗堂). 이명한(李明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만상(李萬相)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봉조(李鳳朝)이며, 어머니는 전라감사 홍주삼(洪柱三)의 딸이다.
강릉참봉(康陵參奉)으로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벼슬길에 나가 정언·수찬·응교·장령·헌납 등 삼사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냈다. 1711년 동래부사로 외보(外補)되었으며, 다시 경직으로 돌아와 1716년 병조참의에 올랐고, 1721년 경종이 즉위한 뒤 호조참판에 배수되고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연경에 다녀왔다.
돌아와 도승지에 임명되어 소론으로서, 조태구(趙泰耉) 등과 더불어 노론의 세력을 탄핵,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그뒤 병조참판을 거쳐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관찰사·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 서예에 뛰어났으며 해주에 있는 이관명(李觀命)이 찬한 「인조대왕탄강구기비(仁祖大王誕降舊基碑)」 음기(陰記: 비의 뒷면에 쓴 글)의 글씨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