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선응(善應), 호는 취아(醉啞). 이집(李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신충(李藎忠)이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이계인(李啓仁)이며, 어머니는 이극강(李克綱)의 딸이다.
8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힘써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는 해곡(海曲)에 은거해 있다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태학의 각종 논의를 장악하고 유안(儒案)을 정리하여 흉도(凶徒)를 척거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처형되자 정시(庭試)를 별도로 실시하였는데, 공릉참봉으로 병과로 급제하여 관리로서 명성을 떨쳤다. 벼슬은 지평, 정언, 장령, 영해부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은 간솔(簡率)하고 검소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표리가 없었다. 시와 술을 좋아하였고 언의(言議)를 숭상하여 여러 학자들의 천거하는 바가 되었다. 대각(臺閣)에 처하여서는 항상 정의를 지키고 청렴결백하였으며,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는 자혜로운 은혜로 대하여 퇴직할 즈음에는 송덕비를 세우고 칭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