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63년(현종 4)에 군수 안시상(安時相)이 유림 김수하(金壽河)의 협조를 받아 중수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양화루(兩化樓)·동재(東齋)·서재(西齋)·입덕문(入德門) 등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東廡)·서무(西廡)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