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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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전주 제남정 편액을 쓴 서예가.
이칭
  • 이칭강암(强巖), 강재(强齋
  • 剛齋), 창암(蒼巖)
  • 윤원(允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완산(完山))
  • 사망 연도1847년(헌종 1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70년(영조 46)
  • 출생지전라북도 정읍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완우 (원광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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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전주 제남정 편액을 쓴 서예가.

내용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윤원(允遠), 호는 창암(蒼巖).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출생. 만년에는 전주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어린 시절에 당대의 명필이었던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는데, 글씨에 열중하여 포(布)를 누여가면서 연습하였다 한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글씨에만 몰두하여 가산을 탕진하였고, 병중에도 하루 천자씩 쓰면서 “벼루 세개를 먹으로 갈아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고 맹세하였다 한다. 글씨 배우기를 청하면 점 하나 획 하나를 한달씩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글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연히 전주에 온 부산상인의 장부를 쓰게 되었는데 그 상인이 귀향하여 감상가에게 보이게 된 것을 계기로 필명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동 칠불암(七佛庵)의 편액과 전주판(全州板) 칠서(七書)도 그의 필적이라고 한다.

또, 전주 제남정(濟南亭)의 액(額)을 썼는데 갑오경장 때 제남정은 소실되었으나 액은 내정(內庭)에 날아 떨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오세창(吳世昌)은 “창암은 호남(湖南)에서 명필로 이름났으나 법이 모자랐다. 그러나 워낙 많이 썼으므로 필세는 건유(健愈)하다.”고 평하였다.

특히, 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서체를 창암체라 하였다. 전라도 도처의 사찰에 그가 쓴 편액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 『명찰편액순력(名刹扁額巡歷)』(김일두, 한진출판사, 1979)

  •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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