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영암군수, 사헌부집의, 함안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8년 다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 해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고, 그 뒤 성균관사예 · 사헌부장령 ·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정선군수를 거쳐 1654년(효종 5) 영광군수, 1656년 다시 성균관직강에 임명된 뒤 안악군수 ·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2년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영암군수가 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에는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다음 해 사헌부집의로 재직하다가 1661년(현종 2)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후진들을 교육시키며 김응조(金應祖) · 조임도(趙任道) 등과 산수를 유람하면서 세사를 잊고 지냈다.
그 뒤 1664년 함안군수에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1년 후 병으로 인하여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죽었다. 저서로는 『성서문집(城西文集)』 6권 3책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서문집(城西文集)』
- 『계유증광사마방목(癸酉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3])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계유증광사마방목(癸酉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13])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이상언 저술 : 『성서집(城西集)』(한국국학진흥원)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