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이직(以直), 호는 동호(東湖). 아버지는 진천현감 이홍우(李弘宇)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동부참봉 강개(姜漑)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한 뒤 천거를 받아 황산찰방에 잠시 재직하였다. 이어 스승이 권신(權臣)의 배척을 받아 향리로 돌아가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성주에서 스승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면서 송대 유학자들의 예설(禮說)을 담은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을 편집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스승이 타계하자 심상(心喪) 3년을 입고 회연서원(檜淵書院)과 비각을 세우는 한편, 『한강집(寒岡集)』을 간행하였다. 1626년(인조 4) 사축서별제에 임명되고 이듬 해에 일어난 정묘호란에 임금을 호위한 공로로 6품에 승진하였다.
이어 얼마 뒤 활인서별제와 의금부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는 고향인 승호(承湖)에서 후진 교육에 힘쓰는 한편, 스승의 『한강언행록(寒岡言行錄)』을 편집하였다.
사후에 문인들이 ‘덕요선생(德耀先生)’이라 칭하였으며 스승 · 아버지 등과 더불어 성주의 회연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동호문집(東湖文集)』 3권 2책이 있다.